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여자 없는 남자들 中, 하루키 단편) 독서

......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잘 아시다시피)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간교함에 도가 튼 선원들이다. 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자들을 꼬여내, 마르세유인지 상아해안인지 하는 곳으로 잽싸게 데려간다. 그런 때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혹 그녀들은 선원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런 때도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선원들조차 손쓸 도리가 없다.

어쨋거나 당신은 그렇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히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당신이 아무리 전문적인 가정학 지식을 풍부하게 갖췄다 해도,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직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룩의 자격을 지녔고 때로는 얼룩으로서 공적인 발언권까지 지닐 것이다. 당신은 느리게 색이 바래가는 그 얼룩과 함께, 그 다의적인 윤곽과 함께 생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그 세계에서는 소리가 울리는 방식이 다르다. 갈증이 나는 방식이 다르다. 수염이 자라는 방식도 다르다. 스타벅스 점원의 응대도 다르다. 클리포드 브라운의 솔로 연주도 다른 것으로 들린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방식도 다르다. 오모테산도에서 아오야마 1가까지 걸어가는 거리 또한 상당히 달라진다. 설령 그후에 다른 새로운 여자와 맺어진다 해도,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멋진 여자라고 해도, 당신은 그 순간부터 이미 그녀들을 잃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선원들의 의미심장한 그림자가, 그들이 입에 올리는 외국어의 울림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다. 전세계 이국적인 항구의 이름들이 당신을 겁에 질리게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
...
엠에 대해 내가 지금도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녀가 '엘리베이터 음악'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 곧잘 흐르는 그런 음악- 즉 퍼시 페이스나 만토바니, 레몽 르페브르, 프랭크 책스필드, 프랑시스 레, 101스트링스, 폴 모리아, 빌리 본같은 유의 음악들. 그녀는 (내 생각으로는) 무해한 그런 음악을 숙명적으로 좋아했다. ... 그녀를 안으면서 파시 페이스의 <A Summer Place>를 몇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 "그러니까, 이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내가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공간에 있는 기분이 들거든. 그곳은 정말로 넓고, 칸막이 같은 것도 없어. 벽도 없고 천장도 없어.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아무 생각 안 해도 되고, 아무 말 안해도 되고, 아무 일 안 해도 돼. 단지 그곳에 있기만 하면 돼. 그냥 눈을 감고 스트링스의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몸을 밑기면 돼. 그곳에서는 한결같이 아름답고 평안하고 막힘이 없어. 그 이상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

"천국에 있는 것처럼?"
"응." 엠은 말했다. "천국에선 분명 BGM으로 퍼시 페이스의 음악이 흐를 거야. 저기, 등 좀 쓰다듬어 줄래?"
"그럼 물론이지." 나는 말했다.
"당신은 등을 정말 잘 쓰다듬어."
나와 헨리 맨시니는 그녀 모르게 서로 바라본다. 입가에 슬그머니 웃음을 띠고.

물론 나는 엘리베이터 음악을 잃어버렸다. 혼자서 차를 몰 때마다 그렇게 생각한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에 처음 보는 여자가 갑자기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타,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13 jours en France>가 들어있는 카세트테이프를 카오디오에 억지로 밀어넣는 상상을 한다. 나는 그걸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카세트테이프가 들어가는 기기도 이제는 없다. 이제 나는 운전할 때 iPod를 USB케이블로 연결해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프랑시스 레도 101스트링스도 물론 들어 있지 않다. 대신 고릴라즈나 블랙 아이드 피스 같은 것이 들어 있다.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우리는 또한 퍼시 페이스와 프랑시스 레와 101스트링스를 잃는다. 물론 그녀의 차밍한 등도 잃고 말았다. 나는 헨리 맨시니가 지휘하는 <Moon River>를 들으며, 그 소프트한 삼박자에 맞춰 엠의 등을 손바닥으로 마냥 쓰다듬곤 했다. 나의 허클베리 프렌드, 굽이굽이 강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 하지만 그것들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남겨진 것은 내가 빠져든 그날 그녀가 반을 잘라 준 오래된 지우개 조각과 아득히 들려오는 선원들의 슬픈 노래뿐이다. 그리고 분수 옆에서 하늘을 향해 고독하게 뿔을 치켜든 일각수.

Henry Macini- Moon River (1960)


엠이 지금 천국- 혹은 그에 비견되는 장소-에서 <A Summer Place>를 듣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칸막이 없는, 넓고 넓은 음악에 부드럽게 감싸여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제퍼슨 에어플레인같은 건 흘러나오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녀가 <A Summer Place>의 바이올린 피치카토를 들으며 이따금 나를 떠올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많이는 바라지 않는다. 설령 나는 접어두더라도, 엠이 그곳에서 영겁불후의 엘리베이터 음악과 함께 행복하게, 평안하게 지내기를 기도한다. 

여자 없는 남자들의 일원으로서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한다.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현재로서는. 아마도.
 
Percy Faith- A Summer Place (1959)


- 여자 없는 남자들(2014) 中


덧글

  • 전진하는 미중년 2021/01/04 18:38 #

    하루키 단편은 진짜 뭔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하면서도 가슴을 건드립니다. 뭔가 슬쩍 이공간을 본 듯한 느낌도 들고.
  • 역사관심 2021/01/05 08:00 #

    정말 직접적인 문장보다 훨씬 더 후벼파지요... 무슨 이야기인지는 경험한 사람이면 절절히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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