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문인이 고려문화가 조선보다 화려했음을 고찰하다 역사

18세기의 문인 유만주(兪晩柱, 1755~1788년)가 쓴 일기인 [흠영(欽英)]에는 이런 재미있는 구절이 나옵니다.

대에서 내려와 동쪽을 보니 옛 비석 하나가 있는데 비록 글자의 형체는 대략 남아 있지만 온통 쪼아 놓아 글씨를 판독할 수는 없고 그저 윗부분에 '보제선사지비'라고 전서체로 씌여 있는 것만 보인다. 비석 뒷면을 거울처럼 반들반들하고 좌우로는 용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귀부가 없다. 비석 몸체는 짧고 널찍한데 만든 본새는 흡사 불비 같다.앞으로 나와 둘러보았다. 들으니 정릉은 송경에서 20리 떨어져 있다 한다. 황량한 들판을 지나가노라니 또 불쑥 솟아난 무덤 셋이 있다. 모두 병풍석에 둘러싸여 있으며 앞에 석물들이 늘어선 것을 보니 옛적의 임금이 묻힌 곳인가 보다. 어쩌면 고려 시대의 왕릉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몹시 쓸쓸하고 보잘것없다.

생각해보면 고려에서 나라를 세운 이래 물력의 풍부함은 우리 조선이 거의 미치지 못할 바이다. 석물을 세운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보기에 노국공주는 평범한 일개 오랑캐 여인으로 동쪽 제후국의 임금에게 시집을 와 더할 나위 없는 총애와 영화를 누리다가 태평한 시절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중략.  바다를 보고 나면 다른 물은 시시하게 보인다더니 정릉의 석물을 보고 나니 길가의 소소한 석물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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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그가 개경을 유람하면서 공민왕-노국공주 묘 부근을 지나다가 느낀 점을 묘사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문인인 그가 전대 고려의 문화재(석물)을 보며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고려에서 나라를 세운 이래 물력의 풍부함은 우리 조선이 거의 미치지 못할 바이다. 석물을 세운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다를 보고 나면 다른 물은 시시하게 보인다더니 정릉의 석물을 보고 나니 길가의 소소한 석물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즉 이 장면은 조선의 선비가 성리학적인 이념인 검소, 소박, 담백함에 대한 미덕을 걷어놓고, 단순하고 솔직한 시각으로 두 왕조의 문화유산의 차이를 느끼는 대로 적은 귀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필자가 평소 이야기하던 우리 현대한국 문화계가 종종 애써 무시하는 '규모의 문화재의 미학'에 대한 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왜냐하면 개성(개경)을 유람한 조선선비의 여러 기록이 있지만 보통은 고려가 망한 것은 이런 이유라거나 이제는 사람은 간데없구나 식의 슬픔의 테마가 더 자주 보이는 표현이기 때문이지요.

유만주가 아마도 본 석물은 이것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사람과 비교했을 때 크기입니다.
노국대장공주 정릉 앞 무인석 정면 (조선고적도보)


[흠영]은 뚜렷한 족적하나 남기지 못한 선비에 불과했던 유만주가 바로 그렇기에 이런 저런 부담감없이 자신이 살며 느끼고 본 그대로를 적은 일기인지라 더욱 흥미로운 기록이었습니다.




덧글

  • 응가 2021/04/08 10:09 #

    대체로 고려왕릉이 조선왕릉보다는 규모가 작고 간소한 느낌이 많은데,(부장품은 물론 전혀 다릅니다.) 고려 정릉이 워낙 규모가 크고 잘 조성이 되어있는지라 그런듯 합니다.
  • 역사관심 2021/04/08 20:44 #

    그럴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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