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관아의 강력한 從僕 귀신 (1781년) 설화 야담 지괴류

오랜만에 기담입니다.

얼마 전 소개한 유만주(兪晩柱, 1755~1788년)가 쓴 일기인 [흠영(欽英)]에는 날짜까지 명확한 괴담이 등장합니다. 다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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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 7월 14일

지금 덕산현 (충남 예산)의 관아에 귀신의 변고가 있다고 한다. 대낮에도 귀신이 멋대로 소란을 피우며 행랑을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얘기를 전해주었다. 신경조가 순창 군수로 재임할 때 어떤 괴이한 것이 관아의 안채에서 온갖 소란을 피우는지라 사람들이 감당을 할 수 없었다. 어떨 때는 커다란 돌로 장독을 깨뜨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밥솥을 뽑아다 문에 내던져 놓기도 했으며, 어떨 때는 숯불을 처마에 빙 둘러 놓아 불을 놓기도 했으니, 거의 반년이 되도록 괴이한 일이 그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정월이 몹시 이상합니다. 이 괴이한 것이 정월에게 빙의 한 것 같습니다."

원래 신경조는 그전에 예천군수로 부임했을 때 기생 하나를 첩으로 두었는데, 그 기생에게 예천 토박이 여자 정월을 사다가 여종으로 삼으라고 주었기에 이 여자가 따라와서 관아 안에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로는 간혹 정월이 나가면 괴이한 일이 그때마다 일어난다는 것이었는데, 한번 시험해 보니 참으로 그랬다.

그래서 정월을 예천 땅의 압예(노비관리인)에게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가 마침 일이 생겨 정월과 함꼐 서울로 올라갔다가 정월을 신경조의 신개의 집에 남겨 두고 오게 되었다. 이때 부엌에서 밥을 하는데 갑자기 가마솥이 아궁이에서 들썩거리더니 공중으로 한 길 남짓 솟구쳐 올라가서는 천장에 척 들러붙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아무렇지도 않게 전에 있던 자리로 내려앉았다. 밥을 하던 여종들은 모두 깜짝 놀라 달아났다. 이에 신개는 황급히 정월을 예천으로 보냈다. 한편 정월이 떠나고부터는 순창군 관아 부엌에서 일어나던 괴이한 일들도 딱 끊어졌다 한다. 끝내 무슨 이치인지 알지 못하였다.

충남 예산 관아

또 이런 얘기도 들었다. 김범행이 안의 현감으로 근무할 때 내아에 건넌방이 있었고, 그 방 뒤쪽에는 뜰이 이어져 있었으며 그 뜰에는 호두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건넌방에 괴이한 것이 있었다. 어느 날 밤 한 여종이 등불을 켜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항아리만 한 푸른 불이 얼굴에 부딪쳐 왔다. 여종은 기절해 쓰러졌다가 간신히 살아났으며 이 일이 있고부터 그 건넌방에는 부녀자들이 감히 거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괴이한 것이 점차 방자해져서 다른 방까지 습격하게 되었는데, 오직 그 집 둘째아들이 소리를 지르면 금방 조용해졌다. 둘째아들이 시험삼아 그 방에 혼자 묵어 보았더니 몇 달이 지나도 괴이한 물건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방에 도배를 몹시 꼼꼼하게 했는데도 날마다 굼벵이가 수북이 쌓여, 쓸어도 쓸어도 또 생겼다.

또 한 번은 새벽에 자다가 깨어 보니 달그림자가 환히 비추는데 웬 개 한 마리가 방구석에 쭈그리고 있었으며 겁에 질려 덜덜 떠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방을 돌아봐도 창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굳게 잠겨 있었다. 그 개는 곧 일어나 나갔다. 다음날 방 안에 있던 등잔걸이가 없어졌는데 우연히 뜰을 걷다가 그 등잔걸이가 담장 위에 거꾸로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등잔걸이가 곁에 무슨 지탱할 것도 없이 그렇게 서 있는 것은 이상했지만 다른 이상한 일은 없었다. 안의현에서 전하는 말이, 옛날 어떤 현감이 그 호두나무 아래에서 종복 두 사람을 살해했기에 이로부터 관아 안에 간혹 괴이한 일이 있게 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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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장소와 날짜가 명확한 흔치 않은 기담으로 장소는 충남 예산의 관아, 날짜는 1781년의 여름입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혼합되어 있는데 우선 먼저 폴터 가이스트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선시대의 폴터 가이스트 현상 (물건이 저절러 떨어지고 날아다니는 현상)은 의외로 조선 실록에 실릴 정도로 흔한 이야기였지요.

이 이야기는 신경조(申景祖, 1708~?)라는 실존인물이 순창군수로 재임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아무도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이라면 누군가 장난치는 걸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직접 다수의 여종들이 대낮에 밥을 짓던 부엌에서 솥뚜껑이 천장에 달라붙는 에피소드는 너무나 명확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더욱 괴이한 것은 이 현상이 '정월'이라는 여종이 집안에 들어오고나서 시작되었고, 그녀가 떠나고 나자 사라졌다는 것. 그녀에게 귀신이 빙의한 것으로 보는 목격담도 나오고 있습니다.


천안 광덕사앞 호두나무 (고려말 파종추정)

두 번째의 이야기 시대배경은 김범행(金範行)이 안의 현감으로 근무하던 일이라는 것은 즉, 1752~1754년 사이의 일입니다. 내아의 건넌방 뒤쪽에 호두나무가 두 그루가 있었는데 그 건넌방에 괴이한 것, 즉 귀것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 방문을 여종이 여는데 항아리만한 푸른 불이 그녀 얼굴을 강타, 그대로 기절했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이것이 다른 방에 까지 진출했다고 합니다. 김벙행의 둘째아들이 기가 좋았는지 그가 소리치면 사라졌고 그래서 그가 그 귀것이 나오는 방에 묵은 후 사라졌는데, 기분 나쁜 것은 도배를 아무리해도 굼벵이벌레들이 계속 기어나오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

그런데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빙의(憑依)가 된 사람이 집에 오면 집안에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파리나 바퀴벌레와 같은 곤충들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함의 이유는 빙의(憑依)가 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이상한 귀신냄새를 벌레들이 맡고서 궁금해서 나오는 현상들이다. 그럴 경우에는 재빨리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주고 향을 피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출처- 링크)

어쩌면 귀신의 냄새를 맡은 굼벵이들이 기어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방문이 다 잠겨있었는데, 그가 자다 깨보니 웬 개 한마리가 달빛에 벌벌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는 것. 어떻게 들어왔는지 그 자체가 괴이하지만 개는 원래 귀신을 본다고 하죠. 짖는 것도 아니고 떨 정도면 이 방에 붙었던 귀것은 굉장히 강력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훗날 알고보니 그 방의 앞에 있던 그 호두나무 앞에서 예전 현감이 종 두 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 두 명분의 원한이 뭉쳐진 것일지도...

아이러니하게도 '호두'는 원래 전통적으로 정월 대보름날 귀신을 쫓아내는 부럼으로 쓰지요.

(사진 출처- https://blog.daum.net/dongyoon0070/1775)


덧글

  • 존다리안 2021/03/29 15:24 #

    저런 괴담이 펄펄 퍼지던 시대의 이야기를 외면한 채 무슨 선비가 귀신을 싹 죽였네 하면서 조선시대
    와 무속, 미신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이 조선시대 기록들을 제대로 읽기나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파면 팔수록 조선의 기이한 이야기들은 풍부하기 짝이 없는데 말이죠.
  • 역사관심 2021/03/29 23:30 #

    무당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는 어마한 영향력을 지배하던 시대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나보군요. 참...

    역으로 성리학으로 이런 풍습을 그나마 억누르던 조선후기에도 이 정도의 이야기들이 남아있는데, 삼국-남북국-고려시대의 기담들은 대체 수준이 어땠을까 매우 궁금하곤 합니다. 수이전에 남아있는 몇가지 짧은 에피소드만 봐도 조선시대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기이함이 느껴지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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