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서당도...김홍도가 그리지 않았다 (2020년 5월 25일 기사 단상) 역사뉴스비평

이 선정적인 논쟁은 사실 십년째 되는 묵은 주제였습니다.

우선 2013년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는 세 교수님들의 주장이 나오는데, 그 중 진위여부에 대해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한성대 강관식 교수의 주장을 일부 보여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제로 단원풍속도첩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이들이 가장 문제 삼는 대목이다. 화첩 안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히는 ‘서당’ ‘씨름’ ‘무동’조차 어깨가 어색하게 과장됐거나 손 방향이 틀린 부분이 나온다.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있는 씨름 구경꾼은 엄지손가락이 밖으로 향해야 하는데 안으로 향해 있다.
강 교수는 “심지어 나룻배는 화풍도 균일하지 않고 필치도 매우 떨어져 진짜 단원이 그렸다면 스스로 찢어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작품은 오히려 긍재 김득신(1754∼1822)의 영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봤다.

이 때문에 강 교수는 “화첩은 단원의 후학인 도화서 화원들이 선배들의 훌륭한 작품을 교본으로 삼기 위해 만든 모사본”이라고 평가했다. 단원풍속도첩도 ‘단원류(流) 풍속도첩’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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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논쟁을 보고 있지만 어찌 보면 매우 흔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지요. 즉, 어떤 '주류'가 된 작품/이론에 반기를 든다> 주류에서 (당연히) 반박을 한다> 중간자적인 입장도 등장한다. 

그러다가 말면 조용히 묻히는 것인데..

그로부터 7년후...

이번에는 좀 더 신선한 관점(내용보다도 문제를 바라도는 태도면에서)이 등장했습니다. 제목에 그대로 나오는데 오히려 단원풍속화첩을 근간으로하는 현재의 김홍도를 바라보는 패러다임, '풍속화가'로 얽매여 놓는 현재 한국고미술학계의 태도자체가 그에 대한 모독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의견은 필자의 눈을 단숨에 끌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원의 그림들은 사실 그 전성기의 화풍을 보면 풍속화가로써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예술적으로 깊이가 있고 대단한 것들입니다. 때문에, 자주 이야기하듯 조선후기의 미술사적 흐름, 즉 소박하고 자연스러움에 걸맞는 그의 작품들 (즉 오늘의 주제인 풍속화첩으로 대표되는)을 선별적으로 골라 가장 자주 대표작품으로 소개함으로써 어떤 틀속에 그를 가두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한번 기사를 살펴볼까요. 2020년 5월 25일 즉, 1년도 안된 새 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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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일까? 국내 회화사학계의 권위자로 꼽히는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곧 나올 신간 <단원 김홍도―대중적 오해와 역사적 진실>(사회평론)의 맺음말에 쓴 일갈은 충격적이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는 더욱 거센 필치로 상식을 건드린다. “우리는 오랫동안 김홍도를 씨름과 서당 장면을 그린 화가로 생각해왔다. 이것은 치명적인 대중적 오해이다. 그는 여전히 대중적 오해의 굴레 속에 갇혀 있다.

가장 조선적인 화가로 통하는 단원이 풍속화의 대가라는 건 한국인들의 당연한 상식이다. 장 교수는 <씨름> <무동> <서당> 같은 명작들로 익숙한 거장의 업적을 평가절하하겠다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책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풍속화가 아닌 여러 폭에 그린 병풍화다. 조선 왕실의 그림 관청 도화서에서 화원으로 일하면서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단원은 풍속도는 물론 인물, 산수, 도석, 꽃, 과일, 동물, 곤충, 물고기 등 모든 그림 분야에서 빼어났던 불세출의 천재였다. 

선조 중에 전혀 화가가 없었던 중인 무반 집안 출신으로 천재적 소질과 노력으로 당대 최고 화가 반열에 올랐다. 이런 단원의 재능과 성가가 가장 절묘하게 발현되었고, 초기부터 노년기까지 줄곧 제작에 몰두하고 새로운 실험적 구도와 기법을 개발한 무대는 바로 병풍화였음을 장 교수는 신간에서 조목조목 입증한다. <군선도> <행려풍속도> <삼공불환도> 등 단원이 남긴 명작은 모두 병풍 그림이며 왕실 그림이든 풍속화든 세부 그림들을 두루 포괄한 대표 장르 또한 병풍화였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단원에 얽힌 미술사의 진실을 바로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풍속화를 포함한 당대 모든 그림 장르를 포괄해 그린 병풍화의 대가로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동아시아 화단에서 중국과 일본 화가들조차 대적할 이가 없었던, 거장 중의 거장이 김홍도의 생애와 예술에 관한 역사적 진실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단원의 풍속화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50년 전 보물 527호로 지정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 <단원 풍속도첩(속화첩)>은 단원을 가장 조선적인 풍속화의 대가로 대중에게 자리매김시켰다. 실제로 이 도첩에 실린 <씨름> <무동> 등의 이미지들은 민속주점에까지 등장하는 국민 그림이다. 장 교수는 지금까지 단원의 것으로 알려진 이 풍속도첩을 진작이 아니면서 거장의 역량과 업적을 왜곡시킨 문제의 본산으로 겨냥한다. 단원의 진작으로 인정되는 <행려풍속도>란 병풍화에 실린 풍속도와 도상과 필치, 배경이 일부 일치한다는 이유로 풍속도첩 그림들이 진작으로 인정받으면서 단원을 풍속화가로 고착시키는 편향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행려풍속도병 중 (필자는 단원의 풍속도는 이런 작품들이 대표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풍속도첩의 진위여부와는 별개로)

실제로 풍속도첩의 그림들에 대해 학계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많다. 그림 전체 또는 상당수가 단원의 진작이 아니며, 단원과 긍재 김득신의 화풍을 19세기 후대 기량이 떨어지는 화가들이 베껴 그려 단원 것처럼 유통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도 나왔다. 풍속도첩은 국립박물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박물관이 1918년 조한준이라는 골동품상한테서 샀는데, 세부적으로 단원 것이라고 딱 부러지게 입증되는 근거는 단원이라는 한자 호를 새긴 도장을 13폭의 그림들에 찍은 것이 유일하다. 

도장의 문양, 도장을 찍은 위치나 지질 등을 분석해보면 후대에 조잡하게 찍은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거의 똑같은 구도로 그려졌으나 화가의 이름만 다른 모작본이 미국과 영국에 팔려 현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의구심을 더하게 한다. 
춤추는 아이의 모작 (즉 풍속도첩것이 아님) (무동 일부, 영국 소장)

첩에 실린 그림들 가운데 <씨름>과 <무동>의 구경꾼과 악사의 왼손 오른손을 바꿔 그리거나 물감이 묻고 종이가 찢기고 밀리는 등의 훼손 흔적이 많은 것들도 진작이 아닌 후대 교본용 화보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강관식 한성대 교수는 실제로 이런 부분들을 일일이 고증하면서 첩에 실린 그림 모두가 단원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2012년 논문을 내어 처음 공론화하기도 했다.

지난 100년간 이 도첩이 절대적인 진작으로 인식되면서 단원을 대표하는 명작이 된 까닭은 뭘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소장됐을 때부터 이 도첩은 <조선고적도보>에 4점이 실려 단원의 명품으로 소개되면서 단원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조선의 문화재들을 문화통치를 위한 효율적 수단으로 생각했던 일제 당국자들은 조선의 봉건적 풍경, 조선인들의 낙후한 생활상을 비교해 보여줄 수 있는 생생한 사료로 활용했다. 해방 뒤엔 전혀 다른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그림이 재해석되는 양상을 맞게 된다. 덕수궁 석조전 시절과 경복궁 박물관 시절 숱한 국내외 전시에 출품되고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18세기 근대적 면모를 보이던 조선 사회의 풍경을 상징하는 단원의 절대 명품으로 이미지가 굳어져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몰아친 전통문화 재조명 열풍 속에서 풍속도첩의 대표작들이 각종 행사, 시설들의 간판, 홍보물 이미지로 더욱 널리 쓰인 것도 이런 흐름을 가속화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단원 풍속도첩’의 옛 표지. 유물번호(114번)을 표기하고 ‘단원 김홍도 필 풍속화첩 조선총독부박물관’이란 명칭과 소장처를 함께 적은 표찰이 표지 아래 오른쪽에 붙어있다. 풍속도첩은 1918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조한준으로부터 구입했을 당시엔 그림 27점이 들어있었으나 1957년 화첩의 앞 뒤에 있었던 <군선도> 2점을 별도의 족자로 떼내면서 현재는 25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한말 골동품상에 의해 명확한 근거도 없이 김홍도 작으로 인정받은 <단원 풍속도첩>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해 편견이 깊어져온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불편하지만, 전문가들이 역량을 모아 도첩에 얽힌 진실을 하나하나 규명하고, 오해를 풀어주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 되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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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주장을 받아들여서 진위여부를 가리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입맛에 맞건 안 맞건 이 정도로 논란이 오래되면 당연히 진리를 추구하는 학계라면 공을 들여 해야할 작업이지요. 

단원풍속화첩이 단원의 것이 아니라면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1) 단원은 신윤복과 같은 풍속화가의 대표가 아니게 되고, 아니, 그는 풍속화가'로만' 여겨온 대중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조선을 대표하는 진정한 대화가로 격상될 것이며 그의 진짜 대작들이 그에 걸맞는 대표성을 획득할 것이고. 2) 풍속화첩은 다른 이의 것이므로 다른 화가를 찾는 작업이 필요해 집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들의 대표성이 폄훼되서는 결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원이 그렸건 누가 그렸건 이 작품들은 조선후기 민중들의 삶을 보여주는 조선의 대표 풍속화로 계속 남아야 합니다.

한가지 중요한 생각할 점은 만약 단원의 작품이 아닌 이 작품들로 판명이 난다면,  20세기 내내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로 여겨온 감성들에 대한 스펙트럼의 확대도 한번쯤 쇄신할 분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는 점. 이런 작품들도 대표되어 온 조선후기식 한국미학 패러다임의 재고 및 확장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말씀드렸듯 거꾸로 이 작품들이 단원의 것으로 판명된다하더라도, 이번 논쟁에서 분명한 대중적 관점의 변화는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즉, '풍속화가'로 (어찌보면 강제적(?)으로) 한정시켜온 김홍도라는 대화가의 틀을 깨는 작업입니다. 그는 풍속화가로 한정지을 작가가 아닙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모습 역시 저 풍속도첩으로 한정되 온 현 프레임도 재고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덧글

  • 함부르거 2021/05/13 16:36 #

    예전에 총독부 건물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군선도를 보고 풍속화첩과는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런 논의가 있었군요.

    동양이든 서양이든 미술품 감정이 제일 말도 많고 어려운 거 같아요.
  • 역사관심 2021/05/14 05:08 #

    맞습니다. 감정이 무슨 딱 공식처럼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정말 전문가의 영역인듯 합니다.

    저는 이와는 별개로 항상 단원의 대표작으로 저 그림들이 되어 있다는게 항상 의아했는데, 제 블로그 주제와 맞닿아 더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뉴스였습니다.
  • 책사풍후미나모토 2021/05/16 05:40 #

    일본제국이 저런 작품들을 대표작으로 지정해 조선의 낙후성을 알리려했다....는 증거가 있나요? 뭐만 하면 일제탓 하는거 같아 보이네요.
  • 역사관심 2021/05/16 09:28 #

    저 기사로만 봐서는 정확히 알 수 없겠습니다.
  • 제비실 2021/05/17 17:05 #

    조선 역사에 대한 일제의 왜곡된 사관은 엄연히 존재하는 건 사실입니다 자료를 편향적으로 취사 선택해 과장 평가하여 조선에 대한 단편적인 편견만 강조하려고 하는건 사실이지요

    일제탓은 반일주의의 노이로제에서 나온게 아니라 객관적인 팩트로 드러났기에
    거기에 대한 평가가 잇따르는 것이지요

  • 응가 2021/05/17 21:18 #

    일본내에서의 미학자체도 서구에서 선호하는 동양의 미의식의 영향을 받은거고 그런 영향이 조선에도 미쳤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런 관점이 과연 옳느냐, 이 말이죠.

    조선백자를 예로 들면, 조선백자도 화려하고 조형성이 뛰어난것이 많은데 대중들은 달항아리같은것을 떠 올리는 것처럼요. 달항아리는 일본인들의 취향이 매우 강하게 드러난 부분중 하나입니다.
    이런것이 좋다 나쁘다 이야기 하기는 애매합니다만, 김홍도라는 작가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단원풍속도첩의 그림중 몇몇이 대표작으로 과거 일제강점기에 대표작으로 지정이 되어서 알려졌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대표적인 화원인 단원이란 작가와 그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생각하실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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