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교급 고대석조 교각 발굴소식 (feat. 길이 150m 고대 수로 확인 (2021.4.27)) 역사뉴스비평

두 달전에 경주에서 귀중한 발굴이 있었습니다. 바로 월성근처에서 대규모 고대수로가 나온 것이지요.

다음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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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왕비 알영 이야기 깃든 길이 150m 고대 수로 확인(종합)

발천(撥川)은 경북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월성 북쪽과 계림을 지나 남천으로 흐르는 하천을 가리킨다. 이 하천의 이름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유래됐다. 삼국유사 권1 기이 1편에 보면 '사량리 알영정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입술이 닭의 부리 같아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퉁겨져 떨어졌으므로 그 천의 이름을 발천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돼 있다.

문화재청은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주동부사적지대(발천) 수로 복원 정비를 위한 발굴조사에서 679년(문무왕 19년)에 만들어진 동궁과 월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고대 발천 수로가 확인됐다고 27일 밝혔다.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추진단에 따르면 유로 방향은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진행하며, 최대길이는 150m 정도로 확인됐다. 수로는 5.2m 정도의 일정한 너비를 가진 직선 형태이나 중앙부는 최대 너비 15m 정도의 부채꼴이었다.

새로 확인된 수로는 오랫동안 알려져 왔던 수로와는 다른 것으로, 이번 발굴을 통해 삼국 시대에는 넓었던 하천 폭을 통일신라에 들어서면서 좁혀 사용했고, 고려 전기까지 사용하다 폐기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아울러 발굴조사에서는 760년(경덕왕 19년) 축조된 경주 춘양교 터와 월정교 터보다 제작 시기가 훨씬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는 7세기 후반 석교 터도 발견했다. 석교 터는 하천의 너비가 5.2m인 것에 비해 다리 너비가 교각을 기준으로 11m가 넘는다. 잘 다듬어진 장대석을 이용해 양쪽 교대를 만들고 하부에는 교각과 교각받침석 7개가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됐다. 이외에 난간석, 팔각기둥, 사각기둥과 청판석 등의 석재가 상부에서 흩어진 채로 확인됐다.
또 석교지 북쪽의 도로에는 초석(礎石)과 적심석(積心石, 돌을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은 돌)이 확인돼 기와집 문의 흔적(門址·문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문화재청은 "특히 '신문왕 3년(683) 왕궁의 북문에서 일길찬(신라 시대 17관등 가운데 7번째 등급) 김흠운의 어린 딸을 왕비로 정하고 성대하게 맞이하였다'는 삼국사기 기록으로 보아 이번 도로 유구의 발굴은 신라왕궁 북문의 위치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도로 서쪽 경계부는 잘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암거식(暗渠式, 물을 대거나 빼기 위해 땅속이나 구조물 밑으로 낸 도랑) 배수로를 설치했으며, 통일신라 석교 터와 연결되는 도로는 너비 20m 정도로, 잔자갈이 깔린 도로면 위에서는 수레바퀴 흔적도 확인됐다. 중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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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물'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라 반가운 뉴스였는데, 개인적으로 특히 흥미를 끈 부분은 이 부분.
"아울러 발굴조사에서는 760년(경덕왕 19년) 축조된 경주 춘양교 터와 월정교 터보다 제작 시기가 훨씬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는 7세기 후반 석교 터도 발견했다. 석교 터는 하천의 너비가 5.2m인 것에 비해 다리 너비가 교각을 기준으로 11m가 넘는다."

하천의 너비는 5.2미터지만 중앙부는 15미터가 넘는다고 했으므로 교각의 규모가 이해됩니다. 다리너비가 11미터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100년후에 지어진 목조교각인 월정교의 너비 13미터와 거의 비슷한 규모로 석조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장대한 교각입니다. 참고로 월정교소개글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현대의 광진교가 13미터급입니다.
서울 광진교


이 새로 발견된 고대석조교각 유구는 다음 측면에서 중요해 보입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제26대 진평왕 17년(597년)에 비형으로 하여금 귀신을 부려 신원사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으라 하였더니 비형이 그의 무리를 시켜 돌을 다듬어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으므로 귀교, 즉 귀신의 다리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 다리는 석조로 겨우 2.5미터의 너비를 지녔지만 시대가 오늘 소개하는 미스터리한 교각과 같습니다.

그리고 월정교는 8세기 중반 (760년)이지요. 귀교와 월정교 사이에는 163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발견된 석조다리가 바로 이 중간지점인 7세기후반(600년대 후반)의 것입니다.

"아울러 발굴조사에서는 760년(경덕왕 19년) 축조된 경주 춘양교 터와 월정교 터보다 제작 시기가 훨씬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는 7세기 후반 석교 터도 발견했다."
비단 시대적인 측면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각 디자인 사에서도 중요할 여지가 있는데 다음의 면들 때문입니다. 물론 귀교터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기는 했지만, 하나의 귀교터 설로 남아있는 터인 오릉북쪽터의 교각터가 있습니다 (2000년 발굴). 이 교각은 석조로 너비가 2.5미터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석조교각은 이런 작은 규모만 고대에 있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올해 발굴된 새로운 7세기후반 석조교각은 말씀드린대로 너비 11미터급입니다. 따라서 너비 13미터에 달하는 목조교각인 월정교로 이어지는 흐름에 영향을 준 다리일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흥미로운 것은 이 부분.
"또 석교지 북쪽의 도로에는 초석(礎石)과 적심석(積心石)이 확인돼 기와집 문의 흔적(門址·문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발굴 현장을 보고 싶은데, 이 '문지'의 위치에 따라 현재 월정교에 중수되어 있는 문루와의 비교도 흥미로울 듯 합니다.
무엇보다 이 두 교각 (월정교와 새로 발굴된 다리)의 위치는 매우 가깝습니다.
image
hmong homeland crossword
https://i.ibb.co/3vJwcMg/image.png

지도에서 빨간 색 부분이 새로 발굴한 교각과 월정교입니다. 파란 부분은 이미 발천에서 알려졌던 또 다른 교량터들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발천은 현재까지도 큰 미스터리인 북궁의 위치와 중요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 제 심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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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뉴스는 보통 단발성으로 끝나곤 하는데 부디 후속연구에 관한 기사도 꾸준히 나오면 좋겠습니다. 추후 관련연구가 나오면 또 소개하겠습니다.
 


덧글

  • 더러운 눈의여왕 2021/07/23 18:33 #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역사.복원.건축 관련 개시물들을 2020년부터 잘 보았는데요, 보아하니 선생님은 2014년부터 그런 글들을 올리셨는데, 그러하면 물어보고 싶은게, 2021년인 오늘 문화재와 옛 흔적 보존 관련 시민의식과 복원절차가 2014년 아니면 그 전에 비해 구체적으로 얼마나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요즘도 잡음은 많지만 나아졌다고 믿기를 희망하거든요... 그리고 또 미래에는 어떻게 바뀌실 거라고 예상 하시나요?
  • 역사관심 2021/07/26 14:34 #

    눈의 여왕님> 댓글 감사합니다. 오래전 글들까지 봐주셨다니 더욱 감사하구요. 제가 관련전문가는 아닌지라 확실히 현장을 알 수는 없습니다만,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풍납토성때처럼 쉬쉬하면서 현장에서 덮어버리는 일은 이제는 많이 줄었다고 생각하구요. 다만, 정책적으로 아직도 시민이 유물이나 유적을 발굴할 시, 보상금의 책정액수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든가 하는 부분등 개선이 빨리 필요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이 다야'라는 흐름이 IMF이후 10여년을 워낙 사회구조에서 지배하다보니 아무래도 이런 분야도 영향을 받았던 측면도 있었다고 생각하구요. 조금씩 확실히 전진하고 있다고 보고, 저도 믿고 싶네요.
  • 고택사랑 2021/07/30 20:02 #

    네, 답변 감사합니다. 계조당 복원할 때 문화재청이 모범적인 복원 사례를 보이겠다라고 했고, 전주감영도 잘 복원한 것 같아 요즘은 그래도 안심이 됩니다. (전주감영은 또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왜 용두를 올려놨는지는 의문입니다. 옛 일제강점기 사진에는 없던데...). 그런데 중도유적지 레고랜드 사태같은 대형사고들도 일어나서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한 8개월 전에 그거 보고 충격먹었었는데,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안 그래도 전쟁들 통에 문화재도 적은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청동기 유적지를 플라스틱 놀이공원으로 바꿔버릴 수가 있는지...

    다른 말이지만 솔직히 말해 해방 후 산업화 때 문화재 보존에 너무나도 안일했다고 생각합니다. 북촌 한옥마을도 1980년까지는 다 한옥이었는데 이제는 한옥 사이사이에 보이는 현대식 건물들이 생겨 풍경이랑 안 맞고, 2001년도 북촌가꾸기사업으로는 오히려 원래 한옥 허물어서 배경에 맞지 않게 현대식 한옥들을 세우지않나... 더 보존했었으면 전반적으로 문화유산가 더 많이 남았을 수 있었을 텐데...
  • 역사관심 2021/08/05 00:31 #

    레고랜드는 진짜 할말이 없습니다. 갈길이 멀고도 멉니다. '경제성'을 바라본다는 거, 다 좋은데 왜 저런 유적지야 말로 레고랜드따위보다 훨씬 장기적으로 경제성을 가지는 걸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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