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신라 금입택 인공 大연못 발굴? (feat. 본피택 지상택 2020. 6.03) 한국의 사라진 건축

작년에 고대신라 왕경의 전설적인 건축물인 '금입택'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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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주 황복사터에서 인공연못 발견
2020-06-03 노형석 기자 

‘삼국유사’ 나오는 호화저택
‘금입택’과 관련된 듯
바닥서 목간과 자도 나와

‘금입택’(金入宅)은 역사서 <삼국유사>에서 신라 도읍인 경주의 절과 집 풍경을 묘사한 대목에 등장하는 단어다. 순우리말로는 금이 들어간 집인 ‘금드리댁’으로 풀이된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승려 일연은 초가가 없었다는 통일신라 전성기 경주 시내 귀족 집들과 불교사원의 화려한 장관을 서술하면서 1360방, 55리의 왕경 영역에 39채의 금입택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아직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금입택은 오늘날 학계에서 격자 회랑으로 구획된 대저택과 왕실사원 등의 고급 건물군이 정원 연못과 짝을 이룬 당대 경주의 호화스런 건축조경 양식을 일컫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금입택’의 역사적 실체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큰 연못 터가 경주시 구황동 낭산 기슭의 왕실 사원터인 황복사터 유적에서 발견됐다. 2017년부터 황복사터 유적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벌여온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최근 절터 동쪽 부근에서 200평 넘는 신라시대 대규모 인공 연못의 바닥과 호안 석축 세부를 확인했다. 또 바닥에서는 절을 뜻하는 ‘寺’(사)를 비롯해 10여개 글자가 쓰여진 목간 1점과 눈금이 새겨진 나무자(신라척) 등 목제유물들도 찾아냈다.
황복사 석탑을 중심으로 펼쳐진 대형 왕실 사원터 발굴 현장. 
금당, 중문터 등이 있는 유적 동쪽(왼쪽)이 이번에 인공 연못의 세부가 확인된 영역

3일 학계 인사들에게 공개된 전 황복사터 유적의 초대형 인공연못 발굴현장

멀리 낭산 기슭의 황복사 석탑 (주: 사진 왼쪽 상단에 보이죠) 앞으로 약간 튀어나온 방형 모양으로 펼쳐진 220여평의 거대 연못이다. 여러 크기의 돌들을 거칠게 다듬어 호안용 석축에 썼는데, 무덤의 석물들도 뒤섞여 눈길을 끌었다. 호안과 바닥에선 귀면와, 목간, 나무 자 등의 중요유물들이 잇따라 출토되었다.

이번에 확인된 대형 인공 연못은 조사 지역 남동쪽 경계에 동쪽이 약간 돌출된 방형의 모양새로 자리 잡고 있다. 안압지(월지)와 구황동 분황사 옆의 원지에 이어 경주의 왕경유적에서는 세 번째로 큰 신라 인공연못으로 확인됐다. 8세기 중후반 통일신라시대에 작은 방형의 연못으로 시작해 9세기를 거쳐 10세기 이후 고려시대까지 최소 3차례 이상 증·개축을 거치면서 200평 이상 되는 면적으로 확장된 흔적이 보인다. 정원의 딸림 연못인 원지의 구실과 더불어 불이 났을 때 물을 대거나 생활용수를 대는 저수조 용도도 겸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목간에 적힌 글자는 연구원과 목간학회 소속 전문가들이 적외선 사진 등을 검토한 결과 ‘上早(또는 軍)寺迎詔沙彌十十一年(상조사영조사미21년)’으로 판독됐다. ‘왕께서 일찌기 절에 영(조서)를 내린 것을 사미승(승려)들이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早’를 ‘軍’으로 읽으면 ‘상군사’라는 절 이름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박 원장은 설명했다. 21년은 신라시대 전성기를 이끈 경덕왕 또는 성덕왕의 재위연도를 뜻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주장했다. 눈금이 정밀하게 새겨진 목척(신라척)은 길이 22cm로, 신라 유적에서는 처음 확인되는 희귀유물이다. 당대 궁궐이나 저택, 연못 등을 건축·조영할 때 설계 측량의 기초 도구로 쓰였으며, 원래 길이는 당나라 자(당척)의 치수인 29cm였을 것으로 조사단은 보고 있다 (주: 오늘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이 신라척 자의 발굴도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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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모양은 방형에 가깝고, 규모는 220평, 즉 727.27 ㎡ 로 매우 큽니다. 이 규모를 간접비교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어음2리 돔베물(봉천수연못)입니다. 200여평의 규모면 이런 느낌입니다.
어음2리 돔베물


사실 기사내용이 좀 아쉬운 것이 어떠한 근거로 이 연못지가 금입택과 관련된 유적인지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단 기사내용대로라면 이 연못터는 현재 경주에서 안압지, 분황사 연지터에 이어 3번째 규모인데 원래의 크기는 (즉 금입택 시절) 200평은 아니었을 것이고 좀 더 작았는데 고려대까지 증축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분명 금입택과 관련된 근거가 있으니 이런 제목까지 달았으리라 생각하고 앞으로 더 상세한 연구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면서 일단 금입택에 관련된 기록을 다시 살펴보고 예전에 필자가 파악한 정보와 이번 발굴소식을 연관시켜보겠습니다.

우선 삼국유사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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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제1  >   제1 기이(紀異第一)  >   진한(辰韓)  >   신라의 전성시대에 서울 호수가 178,936호에 1,360방, 55리, 35금입택이다

新羅全盛之時, 京中十七萬八千九百三十六户, 一千三百六十坊, 五十五里. 三十五金入宅, 言富潤大宅也. 南宅·北宅·亐比所宅·本彼宅·宅·池上宅 本彼部·財買井宅 庾信公祖宗·北維宅·南維宅 反香寺下坊·隊宅·賔支宅 反香寺犯·長沙宅·上櫻宅·下櫻宅·水望宅·泉宅·楊上宅 ·歧宅 法流寺南·鼻穴宅 上同·板積宅 芬皇寺上坊·别敎宅 川北·衙南宅·金楊宗宅 梁官寺南·曲水宅 川北·桞也宅·寺下宅·沙梁宅·非上宅·里南宅 亐所宅·思内曲宅·池宅·寺上宅 大宿宅·林上宅 青龍之寺東方, 有池.·橋南宅·巷叱宅 夲彼部·樓上宅·里上宅·椧南宅·井下宅.

신라의 전성시대에 서울 안 호수가 178,936호(戶)에 1,360방(坊)이요, 주위가 55리(里)였다. 서른다섯 개 금입택(金入宅) 부잣집 큰 저택을 말함이다.이 있었으니 남택(南宅)·북택(北宅)·우비소택(亏比所宅)·본피택(本披宅)·양택(梁宅)·지상택(池上宅) 본피부·재매정택(財買井宅) 김유신(庾信)공의 조상집(祖宗)·북유택(北維宅)·남유택(南維宅) 반향사(反香寺)하방(下坊)·대택(隊宅)·빈지택(賓支宅) 반향사 북쪽·장사택(長沙宅)·상앵택(上櫻宅)·하앵택(下櫻宅)·수망택(水望宅)·천택(泉宅)·양상택(楊上宅) 양부의 남쪽·한기택(漢岐宅) 법류사(法流寺) 남쪽·비혈택(鼻穴宅) 법류사 남쪽·판적택(板積宅) 분황사(芬皇寺) 상방(上坊)·별교택(別敎宅) 개천 북쪽·아남택(衙南宅)·김양종택(金楊宗宅) 양관사(梁官寺) 남쪽·곡수택(曲水宅) 개천 북쪽·유야택(柳也宅)·사하택(寺下宅)·사량택(沙梁宅)·정상택(井上宅)·이남택(里南宅) 우소택(亏所宅)·사내곡택(思內曲宅)·지택(池宅)·사상택(寺上宅) 대숙택(大宿宅)·임상택(林上宅) 청룡(靑龍)이란 절(寺) 동쪽이니, 못이 있다.·교남택(橋南宅)·항질택(巷叱宅) 본피부·누상택(樓上宅)·이상택(里上宅)·명남택(椧南宅)·정하택(井下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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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관련되어 2014년에 쓴 글입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기록을 바탕으로 대강이나마 금입택중 일부의 위치를 비정해 봤었지요.

중략. 본피부에 대한 비정으로는 미탄사 기록에 나오는 '최치원의 옛집' 기록이 중요합니다.
"(최)치원(致遠)은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皇龍寺) 남쪽에 있는 미탄사(味呑寺)남쪽에 옛 터가 있는데, 이것이 최후(崔侯, 최치원)의 옛 집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삼국유사에는 본피부로 나오나, 이상하게도 [삼국사기]의 최치원열전에서는 “최치원은 경주 사량부 사람이다. 역사 기록이 전하는 것이 없어 그 집안을 알 수가 없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위치비정상 이건 오기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단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겠습니다. 이와 더불어 삼궁의 위치까지 현재까지의 자료를 하나하나 비정해서 지도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중략.
금입택 위치 비정지도 (2014)


이 중 오늘 소개하는 기사와 관련이 있는 부분은 미탄사 남쪽에 본피부가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위치상으로 이곳이지요.

미탄사지는 기사에 나오는 금입택 연못이 있는 황복사지와 매우 가깝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이렇지요. 즉, 미탄사 남쪽은 황복사의 서쪽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실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저택들은 35채가 아니라 총 39채입니다. 때문에 부명(部名)을 갖는 양택(梁宅), 사량택(沙梁宅), 본피택(本彼宅), 한기택(漢岐宅) 등 4개의 금입택은 왕실의 이궁(離宮)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이기동, 「신라금입택고」, 진단학보 45, 1978).  

일단, 저택중 4개가 본피부 혹은 사량부에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최치원의 집이 본피부인가 사량부인가에 따라 둘 중 두 채는 제외될 것입니다.

* 본피택(本彼宅) : 『삼국사기』 권6 신라본기6 문무왕(文武王) 2년(662)조 기사 및 권39 잡지(雜志)8 직관(職官) 중(中)에 나오는 본피궁(本彼宮)과 관련될 가능성을 제기한 연구가 있었다.(三池賢一, 1971) 

* 지상택(池上宅): 본피부에 있다는 삼국사기 기록.

* 사량택(沙梁宅) : (4)본피택을 본피궁으로 비정한 것처럼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진평왕(眞平王) 44년(622)조와 권39 잡지8 직관 중(中) 내성(內省)조 및 권48 열전8 검군(劒君, ?-628)조에 언급된 사량궁(沙梁宮)일 가능성을 언급한 견해가 있다.(三池賢一, 1971) 사량부 내에 있었을 가능성 외에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

* 아남택(衙南宅) : 명칭이 관아가 밀집한 지역의 남쪽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육부에서 중심적인 세력이었던 사량부(沙梁部)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 견해가 있다.(이기동, 1984) 

이를 근거로 지도로 보면 황복사지의 왼쪽에 있었을 가능성이 보이는 저택은 이 네 금입택중 하나가 됩니다.

금입택의 기록중에 또 한가지 오늘 발굴소식과 관련되어 흥미로운 기록 하나가 있습니다. 금입택에 '연못'이 있다는 직접적인 기록이 그것으로 주인공은 바로 임상택(林上宅)입니다.

임상택(林上宅) 청룡(靑龍)이란 절(寺) 동쪽이니, 못이 있다.·

경주 청룡사지는 남산 자락에서도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그 오른쪽이라고 하면 오늘 소개한 황복사터와는 비교적 먼 거리입니다 (청룡사지가 저 기록에 나오는 사찰인지도 아직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금입택에 '연못'이 있었다는 공식기록을 남긴 저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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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만약 저 곳이 본피부라면 그리고 만약 저 저택지가 본피택이라면 현재 한 이론처럼 신라왕실의 '이궁'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본피궁 설). 그렇다면 황복사라는 (이름답게 황실의 복을 구하는) 사찰과 본피택의 관계 역시 한번 들여다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와 더불어 왕실이 아니더라도 금입택과 사찰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얼마전 있었는데 이 발굴결과에 따라 실체성을 띄는 이론이 될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이론은 1993년에 경주시 북천(北川)의 건너편이면서 분황사(芬皇寺)의 정북쪽에 해당하는 동천동 삼성아파트신축부지에서 건물지와 관련된 44매의 초석과 석탑의 옥개석 2매가 나오면서 금입택 중의 하나인 판적택(板積宅)[분황사의 상방(上坊)]일 가능성을 높게 본 연구에 의거한 것으로 이 경우 금입택을 “금당(金堂)과 탑(塔)을 가진 주택”으로 해석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이에 앞서 1982년 동천동 폐사지의 탑지 주변에 대한 조사에서도 탑의 규모가 작은 소형사찰 구조임이 밝혀졌는데, 그 규모가 주택 내에 포함될 정도였으므로 금입택 중 하나일 가능성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즉, 금입택 중 일부저택은 도성 내에서 개인의 원찰(願刹)을 보유한 대주택으로 생각하는 이론입니다.

이 경우, 황복사지, 황복사 석탑, 그리고 금입택(본피택?)과의 관계성도 아직은 너무 이르지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모로 흥미로운 발굴입니다.

아무쪼록 저 기사들말고 자세한 연구성과를 조만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금입택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무언가 건물터등 실체가 새로운 발굴결과로 나와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14년 다른 관련글:




덧글

  • 백두 잊혀진 역사여행 2021/07/14 09:14 #

    요즘 경주시 외곽지역에서 대규모 절터와 건물지들이 발굴되는 것을 보면, 과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허황되지 않았음을 다시한번 느끼는 중입니다.ㅎㅎ
  • 역사관심 2021/07/14 12:28 #

    맞습니다. 삼국사기 기록을 일부에서 이상하게 못믿는 분위기였는데 이런 발굴들로 확실시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모량리 유적지발굴은 획기적인 전환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저 글을 쓰고 얼마 안있어서 나온 발굴이라 너무 신기했던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경험이었구요 ㅎㅎ.
  • 꼬장꼬장한 가마우지 2021/08/15 03:57 #

    본문과 상관없는 얘기입니다만, 신라금동대탑에 대해서 알고계신가요?
    9층목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 모형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복원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관심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 역사관심 2021/08/15 05:04 #

    그렇지 않아도 얼마전 기사를 접하고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기사 하나뿐이라 자료부족으로 소개를 못하고 있네요. 좀 더 알아보고 포스팅할 수 있으면 해보려 합니다. 정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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