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멕시코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 기사 스포츠

이제 3주 후면 2024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전이 열립니다. 

요즘은 본선진출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을텐데 1986년 멕시코 월드컵까지만 해도 '못가는 게 일상'인 것이 월드컵이었지요. 바로 그 86년 월드컵 본선진출을 결정지었던 한일전 2차전 (서울) 직전 기사입니다.

아래는 당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1진의 면면입니다. 조광래, 이태호, 최순호, 정용환, 김종부, 김주성 기라성같은 스타들이 포진. 일본하면 당시에는 '하라'(스트라이커)만 기억나네요.
참고로 오른쪽 여배 사진에서 스파이크 넣는 선수가 요즘 김연경 인터뷰로 논란이 된 유애자씨- 당시 국가대표 에이스.


이 경기가 필자가 직접 가서 본 유일한 월드컵 예선경기가 되었습니다 (본선은 2002년 터키 대 중국 전). 스코어는 1:0으로 이겼지만, 사실 내용은 3:0, 4:0까지 갈수도 있는 일방적인 흐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차전까지 이긴 이유로 일본은 조급함이 그대로 경기장에서 보였고 이를 잘 이용, 거의 가지고 놀았던...

9월 최종예선도 중동 모래바람을 잠재우고 거뜬하게 돌파하길 기원합니다.




덧글

  • 무명병사 2021/08/12 10:17 #

    저도 그렇긴한데, 언제부터인가 "엥? 월드컵? 그거 당연히 본선에 올라가야 되는 거 아니냐?"같은 인식이 퍼져있더군요. 좀 위험하지 않나...
    + 지금 생각해보면 차범근이나 아드보가트 감독 시기엔 예선에서 너무 잘해서 전력이 다 알려진 나머지 밑천이 바닥난 게 아닌가 합니다.
  • 역사관심 2021/08/12 21:10 #

    오늘 뉴스에 피파랭킹 호주에게 밀려 4위까지 내려갔더군요. 이러다 진짜 위험해질지도... 언제까지 반짝 대회에만 신경쓰는 축구문화로 버틸지 (그것도 피파랭킹 관련도 없는 대회들까지).
  • 홍차도둑 2021/08/19 23:00 #


    무명병사 님 / 이미 도전자가 아닌 응전자가 되었죠. 거기다 또 2002이후 대한민국이 매우 불리해진게 축구 대표팀의 경기장 인프라가 최상급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그 덕분에 1-2차 예선전을 치루는 경기장들은 대한민국 축구 선수들에게 있어서 볼컨트롤이 제대로 안되고 뛰면 발목 접질러지는 운동장이 되는 일이 발생했죠.
    이런 현상을 처음 겪은게 프로권투인데 무려 1980년대 초에 해외원정간 선수들이 다운당한 뒤에 일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 중 하나가 "링 캔버스가 너무 푹신해서 스텝이 국내와는 다르게 잘 안먹혔고 다운당한 뒤에 너무 푹신해서 링에서 일어나기 싫었다"는 인터뷰도 보일 지경이었거든요...
    거기다 1990때에 너무 압도적으로 올라가버린 것과 1994때의 드라마틱한 부분, 1998때의 가장 큰 하일라이트였던 '도쿄대첩'이후 쫙쫙 밀어버린 부분이 컸습니다.

    역사관심 님/카타르 이후 쿼터 확대로 더 확실히 올라간다며 정확한 분석 없는 언론들과 그에 동조하는 '네티즌'이라는 이름의 하이에나떼거리들이 넘쳐흐르죠.
  • 홍차도둑 2021/08/19 23:08 #

    저거 기록정리를 축구협회에서 하청/재하청 받아서 해준적이 있던지라...

    저 당시 1차전에 출전하지 못했던 '하시라타니'가 참 대단한 선수였죠. 저때 일본이 기존의 '수비강함'과는 달리 하라/하시라타니/기무라 라는 3각편대가 위용을 떨치던 때입니다.
    일본은 최종예선까지의 모든 경기에서 15골을 뽑아냈는데 이중 5골이 기무라가 프리킥으로 직접 꽂아넣거나 프리킥-코너킥 어시스트로 만들어낸 골이었습니다. 그 헤더를 담당한게 하라 선수였고 필드를 주름잡던 선수가 하시라타니였죠.

    수비진은 1982년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을 탈락시킨 그 멤버들입니다. 그래서 최순호를 막기 위해 이시카미를 전담마크를 시켰죠 당시 대한민국 에이스인 정해원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전력이 있는 선수였는데...근데 아시겠지만 제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기량을 가진 선수'로 꼽는게 최순호였고 당시 모리 일본 감독도 '최순호를 막기 위해선 두명 세명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그는 이미 아시아수준의 선수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였죠...저때 가토 선수도 같이 두명이 달겨들어서 막아버렸을 정도니까요. 얼마나 심하게 막았는지 경기직후 KBS에서 선수들 그냥 델구와서 긴급방송으로 '환영회'를 할 대에도 최순호선수는 소도구에 혼자 앉아서 고통스런 표정을 계속 짓고 있었죠...아니 그전에 골과 연결되는 슈팅 이후 허정무의 골이 들어갔을 때에도 허정무에게 달려가지 못하고 슈팅한 자리에서 그냥 펄쩍펄쩍 뛰기만 했으니...

    정말 그 경기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최순호 선수의 인생경기중 하나가 아닐까 싶긴 합니다.
    스코어는 큰 차가 아니었지만 '최순호'라는 에이스가 당시 아시아권에서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 알려면 저 경기를 봐야 합니다.
    특히 2명-3명이 이중으로 막아댔는데도 한국 공격수들이 큰 찬스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할 정도로 일본 수비진들의 움직임을 보면 일본도 당시 만만한 팀은 절대 아니었어요
  • 역사관심 2021/08/21 14:23 #

    역시 전문가는 다르시군요. 저는 그냥 우당탕탕하는구나 느낌으로 본 경기였는데 이런 뒷배경을 들으니, 지금 다시 경기를 한번 찬찬히 보고 싶습니다 (하이라이트말고). 최순호같은 대형스트라이커 시대가 또 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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