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질문과 일반적 질문, 개별자와 이데아 독서

한국학의 대가 중 한분이신 주영하 선생께서는 한 대담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출처: 2005년에 출간된 [19세기 조선, 생활과 사유의 변화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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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의식주에만 국한하여 본다면 의식주의 변화는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기 보다는 역사의 반영물로 나타나는 경향이 강합니다. 즉 시대적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의식주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이지요. 

따라서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른바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오늘날의 '생활사'는 그야말로 잡학이 되고 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저는 이제 민속학이, 전근대와 근대의 전환과정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대에 적응해왔는가 하는 점을 살피고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시대적 맥락과 원인을 밝히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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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에 대해 반박한 바 있는 한국학 & 생활사 (미시사 포함) 단상 (근원적 반론)에서 이어지는 사유입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다음의 반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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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시대적 맥락과 원인을 밝히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지,  "생활사를 의식주나 일상생활 같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이해해서는 안" 되는지, 왜 "생활사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가 어떤 생각과 인식 속에서 시대정신이 움직여왔는가를 밝히는 데 두는 것'이 되어야 하는지, "생활속의 구체성이 역사적 원인을 밝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는 것인지 강하게 반문하고 싶다.

필자가 항시 이야기해 온 '한국학의 형이상학적 강세'와 '구체적 가시감의 결여'현상이 바로 이러한 관점이 강한 현재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라 경주의 흥망성쇠와 그 이유에 대한 연구는 많았고, 정치제도, 경제제도, 전쟁사와 같은 관련 연구는 활발하다. 역사학이 할 일이다. 하지만 신라의 건축에는 어떤 구체적인 다양한 모습들이 있었는지, 구체적인 의복들은 뭘 입었는지, 뭘 먹었는지는 대중들은 배우기도 접하기도 힘들다. 그렇기에 '머리속에도 드라마속 몇 장면만이 티미하게 떠오를 뿐'이다. 

'한국학'은 = '역사학'이 아니다. '한국학'은 정의를 옮기자면 '한국에 관한 다양한 면의 분야에서 고유의 것을 연구계발하는 학문'이다. 그 분과가 언어,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다양하게 갈려있으며, 역사학은 그 일부이다.

"한국적인 무엇은 없다고 생각하자. 대신, 가, 나, 다... 만 있는 것이다. 가를 파악하고, 나를 파악하고, 다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체적으로 구현하라.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적인 '무엇'을 찾을 생각을 버리고 충실하게 실체에 접근할 때, (역으로 or 결과적으로) 한국적인 무엇은 찾아질 것이다 (아니, 찾아지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풍부한 한국문화가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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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관점에서 어찌보면 우연일지는 몰라도 비슷한 글을 다음의 책을 읽다가 발견했습니다. 다음은 박민아 선생의 2006년 저서 [뉴턴 & 데카르트]의 글중 일부입니다. 

RNA가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생물학자 프랑소와 자코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 과학의 출발점은 '우주는 어떻게 창조되었을까?......생명의 본질은 무엇일까?'등의 일반적인 질문이 '돌은 어떻게 낙하할까? 물은 관 속에서 어떻게 흐를까?' 등의 더 겸손한 질문으로 대체된 시점과 일치한다.  

일반적인 질문은 매우 제한된 답을 산출하는 반면에 제한된 질문은 더 일반적인 답을 산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를 보편적인 통찰로 이끄는 것은 심오한 문제에 대한 사변이 아니라 특수한 수수께끼를 푸는 노력이다.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

뉴턴의 역작 [광학]이 출판된 것은 1704년, 영어로 쓰인 이 책은 프리즘 실험등을 통해 빛은 서로 다른 굴절률로 구분되는 일곱가지 단색광들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뉴턴은 '빛과 색의 본성이 작은 입자의 운동인가, 물질의 고유한 속성인가'와 같이 실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은 채, 실험으로 보여줄 수 있는 빛의 속성들만을 다루었다. 

이런 점에서 뉴턴은 데카르트가 던진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데카르트와는 달리 확인할 수 없는 미시적인 메커니즘을 도입하지 않은 채, 프리즘 실험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시적인 현상들만을 다루었다. 이처럼 검증 불가능한 가설을 도입하지 않는 방법은 뉴턴주의 과학의 특징으로 자리잡았고, 쓸모없고 소모적인 가설과 독단을 피한 채 생산적이고 해결가능한 논의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뉴턴주의 방법론은 과학을 넘어 다른 학문과 사회가 좇아야 할 모범으로 칭송받게 된다. 뉴턴의 방법론을 사회에 적용하는 일은 볼테르를 비롯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 뉴턴 & 데카르트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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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 저명한 물리학자였던 폰 베이어는 이런 인상적인 말을 남깁니다.

일반적인 질문은 매우 제한된 답을 산출하는 반면에 제한된 질문은 더 일반적인 답을 산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반적인 질문이라는 것은 결국은 연역식 접근에서 나오는 질문에 가까울 것이고, 제한된 질문이란 것은 이보다 귀납적 접근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지요.

연역적 접근으로 대상을 접근하는 방식은 뜬 구름잡기로 끝나기 일쑤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문제가 한국학계에 알게 모르게 팽배해있음을 느끼곤 하는데, 최근 일부 소장학자들에게서 이런 질문들이 나오는 것 같아 학문적으로는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다음은 '조경학'쪽에서 비교적 최근 나온 논문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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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경사 서술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2017)

임한솔 서울대 박사과정


4.1 한국 조경사 서술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고착화된 전제・해석의 탈피 필요

앞으로 조경사 서술을 비롯하여 조경사/전통조경 관련논고가 우선적으로 벗어나야 할 부분은 이전의 조경사서술에서 전제한 배경 사항이나 해석의 관점을 무분별하게 따르는 경향이다. 초기부터 현재까지 발간된 조경사서술 단행본의 상당수는 서두에 사상적 배경을 정리하는 내용의 총설 부분을 담고 있다. 유교/도가/신선/풍수/음양오행/자연숭배 등의 사상적 배경을 전제한 후 시대별/유형별 각론을 전개해 나간 것이다. 이러한 서술 구도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점도 짚어야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러한 ‘총설’을 이루는 사전적 논의가 키워드나 중심 내용의 큰 변화 없이 이어져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상적 배경에 대한 무분별한 답습은 어떠한 현상이나 대상의 의미를 해석해나가는 과정에 개입하여 추상적이고 차별성 없는 결론을 이끌게 마련이다. 가령 방지원도(方池圓島)는 조선시대 조경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양식적 특징으로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천원지방(天圓地方)이 실제 수공간을 조성하는데 적용되었거나, 그것이 주역 등의 유교적 원리를 대변한다는 실증적 규명은 진행된 바가 없다. 다만 윤국병의 초기 조경사 서술에서 그러한 해석이 발견될 뿐이다. 또한 못 가운데에 섬이 있을 경우 도가적 반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도가’라는 해석 하에 각각의 사례들이 갖는 구체적 의미를 흐리게 할 위험이 농후하다. 

물과 섬의 관계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도가로써 유사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은 학술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조경사 연구가 지닌 풍부한 연구 소재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이상으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착화된 전제나 해석의 관습을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

4-2. 시대별ㆍ유형별 각론의 통합 필요
본 연구가 검토한 한국 조경사 단행본의 목차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양상 중 하나는 고려, 조선 등의 왕조사별 시대구분을 전기, 후기와 같이 세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역사학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전통문화의 측면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시대 변천에 따른 양식이나 문화의 ‘변화 과정’에 대한 역동적 해석이 충분하지 않은 점과 각 유형 사이의 영향 관계에 대한 고려가 아쉽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제기한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은 "조선조 정원의 원형에 관한 연구(1989)"에서 이미 제기된 바 있다. 궁원, 학교, 사찰, 관아 등의 정원을 서로 비교해 보고, 이상이 성립된다면 중국, 일본과의 비교도 가능할 것이고, 이상이 성립된다면 동북아시아 외 문화권과의 비교도 가능할 것으로 거시적 전망을 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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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대 조경사 (정원등을 연구하는)의 접근론적 비판인데, 일단 종교적인 사상적 배경같은 거대담론을 서술한 뒤, 각론을 전개, 결국은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한 설명으로 끝난다는 점입니다. 예전부터 필자역시 짚었던 부분으로 개인적으로 너무 답답해서 이런 일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공식관련 사이트에서도 이런 분류를 제공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지라). 


이는 요괴연구도 마찬가지이고, 의복도, 건축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연역적 접근에 너무 익숙해 있는 것이 한국학계의 모습입니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는 "감각작용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순수사유에 의해 포착되는 존재"입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 한국학계는 그 단추를 20세기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채운 뒤, 계속해서 그러한 존재를 파악하는 것을 추구하는 흐름으로 이어져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과학뿐 아니라 (아니 오히려 더욱 더) '역사연구'가 아닌 '문화연구'는 각분야를 막론하고 개별자를 파악하고 전체를 그려나가는 방법이 맞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하게 되는군요.



덧글

  • 존다리안 2021/09/08 12:27 #

    개인적으로 한국인들이 학문적으로 “추상사고”를 높이 보고 미시적, 물적 측면을 무시하는 측면이 있어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21/09/09 04:07 #

    말도 안되는 생각이겠지만 가끔은 물질적 문화재의 파괴로 인한 직접적 영향외에 이기론의 영향력이 선구자격 선생님들을 포함, 현재까지도 그 힘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헛된 망상까지 들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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