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라진 대건축물 (19)-성 안의 네거리 종로 한복판에 있던 조선전기 종루(鍾樓)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을 논할때 거의 언급되지 않는 그러나 조선전기 서울(한양)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있습니다. 바로 종로 네거리에 있는 종각, 아니 '종루'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한번 살펴볼까요.


보신각의 중수 역사

보신각은 1396년 현 인사동 골목 입구에 처음 세워진 이래 네 차례의 소실과 여덟 차례에 걸친 중건을 거쳤습니다. 처음에 세워졌던 종각은 지금의 자리가 아니라 종로 2가 탑골공원 쪽에서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 격인 옛 청운교(靑雲橋) 서쪽에 있었습니다.

15년 후인 태종 13년, 1413년에 광통교(廣通橋)가 있던 위치로 옮기고, 이후 세종 22년인 1440년 들어 동서로 5칸, 남북으로 4칸 누각으로 중건, 위층에는 종을 매달고 누각 아래로는 사람이나 말 등이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중건 당시 큰 종을 새로 만들어 걸었는데 약 130년 동안이나 걸려 있었다고 하지요. 

그 후 역시나 이 시리즈의 수많은 건축물처럼 1592년 임진왜란의 화마로 전소됩니다. 피난갔던 왕실이 다시 서울에 돌아와 보니 이미 종이 5분의 2 이상 녹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계속 화재등의 비운을 겪고 다시 중건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현재 위치의 보신각은 원래 태종 당시 옮겨졌던 곳에 그대로 자리잡은 것이 아니고 도로 보수나 전란, 화재에 의한 소실 등으로 약간씩 뒤로 옮겨 새로 지어졌는데, 1979년 8월 15일 또 다시 뒤로 옮겨지으면서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누각으로 다시 세운 것입니다. 아래는 태조(태종 x)가 처음 세웠던 종각의 대략의 추정위치입니다 (이 자리를 제대로 발굴한 적은 없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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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의 종루

그럼 왜 이 건물이 조선전기의 대표적 건축중 하나로 추정해 볼 수 있느냐. 이는 세종대에 재건한 이 종루를 (당시에는 보신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중국의 사신이 눈으로 본 기록에 근거해서 생각할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조선부]의 기록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권 / 경도 상(京都上)
명 나라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에,

宮室之制,與華亦同。其塗皆丹,【國無銀硃,以丹代之。桐油亦無。】 其覆皆ㅁ(수키와 와)。
殿居中乃有琉璃之靑蔥。【惟正殿曰勤政者用綠琉璃,餘皆不用

궁실(宮室)의 제도는 중화와 같아서 모두 단청을 칠하고 (주: 주칠(붉은 색)입니다. 단청이 아니라- 이 부분은 이미 예전에 다룬 바 있지요) 이 나라에는 은주(銀硃)가 없기 때문에 단청으로 대신한다. 오동나무 기름도 없다. 기와를 얹는다.

鍾鼓有樓。【在城內四達之衝,甚高大。】 仡仡國中,言言道周。以燕以息,以遨以遊。臥榻則環以八面幃屛,

종과 북이 있는 누대가 있어 성 안의 네거리 종로 한복판에 있는데 매우 높고 크다. 서울 안에 우뚝 솟았고 또한 길가에 높고 높도다. 잔치하고는 쉬고 즐기며 또 논다. 와탑(臥榻)에는 여덟 폭 병풍을 둘러치고 이 나라 풍속에 그림을 거는 일은 적은데, 모든 공관(公館)에는 네 벽에 모두 병풍을 세웠다. 병풍에는 산ㆍ물ㆍ대ㆍ돌을 그리거나 혹 초서(草書)를 썼는데, 높이는 2ㆍ3척이다. 와탑도 그러하다. 성긴 주렴에는 반쯤 걷힌 향구(香鉤)를 올려 둔다.
 
문무(門廡)와 편전(便殿)에는 모두 기와를 쓰는데, 중화의 관공서의 덮개와 같다. 문은 세 겹으로 하여 배라(杯螺)의 번쩍이는 빛을 죽이고 대궐의 앞 문은 광화, 둘째 문은 홍례, 셋째 문은 근정(勤政)으로, 쇠못과 고리만을 썼다. 전(殿) 중앙에는 푸른 유리가 있다. 오직 정전(正殿)만을 근정이라 하고 푸른 유리를 쓰고, 다른 곳에는 쓰지 않는다. 

당사(堂戺)는 일곱 계단의 차등이 엄격하고 계단은 모두 거칠게 간 석추(石甃)로써 하였는데, 형세가 매우 높고 위에는 자리로 덮었다. 비단창은 여덟 창문의 영롱함에 맞추었다. 전의 동서의 벽에는 모두 요격자(腰膈子)를 설치해 놓고 조서를 받을 때에는 다 갈구리로 건다. 혹은 높은 산으로 한계지어 따로 이궁(離宮)을 짓기도 한다. 

근정전과 인정전에는 모두 각각 문을 만들어 들어가니, 모두 산으로 막혀있기 때문이다. 대개 모두 편편한 곳을 가려서 터를 잡지 않는 것은 오직 그 기세가 웅장하게 보이고자 해서이다. 조서가 전(殿)의 뜰에 이르면 임금은 몸을 굽히고, 세자(世子)와 배신(陪臣)들은 좌우에서 부축하고, 헌가(軒架 경쇠를 다는 시렁)를 섬돌 위에 설치하고, 장막을 정우(庭宇)에 둘러친다. 전의 앞과 섬돌 위에는 모두 흰 베로 만든 장막을 둘러치니, 흰색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의장(儀仗)은 방패를 가지런히 하고, 음악을 연주해서 축어(祝圉)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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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부는 중국 나라의 (董越)이 조선 성종 19년인 1488에 조선에 사신으로 다가 국으로 돌아가 자신이 보고 은 대의 조선모습을  기록입니다. 따라서 세종이 1440년에 재건한 종루를 목격하는 장면인 것이지요. 다시 볼까요?


國無銀硃 이 나라에는 은주가 없다.
수은(水銀)으로 된 주사(硃砂). 흔히 주묵(朱墨)이나 약제(藥劑)에 쓰임.

주사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연적(天然的)으로 나는 유화수은(硫化水銀). 짙은 붉은빛의 광택(光澤)이 있는 육방정계(六方晶系)에 딸린 덩어리로 된 광물

따라서 이 부분은 앞서 소개한 '궁실의 제도는 중화와 같아서 모두 '단청'을 한다'는 것이 요즘 이야기하는 '상록하단 식 단청'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주칠(붉은 칠)'을 한다는 뜻임을 다시 보여줍니다. 즉, 더 좋은 광물인 '은주'로 붉은 색을 내야 하는데 그 광물이 나지 않으니 그냥 붉은 단청을 한다는 것이지요.

銀朱 (은주)


동월은 직접 세종대의 종루를 보고 이런 묘사를 남깁니다.

鍾鼓有樓。【在城內四達之衝,甚高大。】 仡仡國中,言言道周。以燕以息,以遨以遊。臥榻則環以八面幃屛,
종과 북이 있는 누대가 있어 성 안의 네거리 종로 한복판에 있는데 매우 높고 크다. 서울 안에 우뚝 솟았고 또한 길가에 높고 높도다. 잔치하고는 쉬고 즐기며 또 논다.

다시 직역해 볼까요.

鍾鼓有樓 종과 북이 루에 있다 (누대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이렇게 고건축용어를 마구잡이로 의역하는 건 문제같습니다)
在城內四達之衝 성안 사방으로 통하는 거리에 있다
甚高大 심하게 높고 크다
仡仡國中 도읍 안에 높이 솟았구나 (仡仡(흘흘)이라는 표현은 한자로 우뚝 솟은 높은 것을 뜻합니다)

높이를 매우 강조하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5세기 명대면 높은 건축물은 매우 흔했을 시기입니다. 그런 곳에서 온 사신이 과연 현재의 이 모습을 가지고 중국에서 온 사신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이)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의문입니다.
현재의 보신각

참고로 당대 명나라의 종루(중국어: 钟楼)는 이런 규모였습니다. 물론 이건 가장 큰 종루였습니다. 시안시에 있는 명나라 초기에 세워진 상징물로 1384년에 세워졌지요. 중국에 있는 종루 중 가장 규모가 큰 것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이런 규모는 아니었겠지만, 이런 종루를 흔히 접하던 중국사신이 조선 한양에 와서 현재규모의 보신각(종루)를 보고 저러한 식의 묘사를 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더불어 탑골공원에서 인사동 초입으로 들어가는 쪽에 있었다는 기록의 이 조선 전기 종루터에 대한 발굴도 언젠가는 제대로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덧글

  • 꼬장꼬장한 가마우지 2021/11/01 02:15 #

    키요미즈데라 같은 규모였을수도 있겠네요!뭔가 지금보다 넓적한 느낌의 건물이였을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21/11/01 06:09 #

    그정도까지 대규모였을 것 같지는 않지만 뭔가 높이 솟은 건축이었을 것 같습니다. 관련 문헌기록이 너무 적어서 아쉽네요...
  • 응가 2021/11/05 17:19 #

    세종 22년에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고쳐지었는데 이때도 2층이라고 기술되어있고 그 이전에도 2층이라 기재되어있어 임란전 보신각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듯 합니다.
    꼭 지금과 차이를 둔다면 그 때는 18척 기둥을 썼을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와 별개로 당대 단청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는 건물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북한에 남아있는 박천 심원사 보광전, 연탄 심원사 보광전, 사리원 성불사 극락전이 여말의 다포계 건축물로 그 시절 단청과 건축의 옛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https://dbscthumb-phinf.pstatic.net/1494_000_1/20121030155456164_KRPC7G065.jpg/26_i48.jpg?type=m4500_4500_fst_n&wm=Y)
    이미 송대에도, 고려말에도 상록하단이 존재한 바, 은주가 없단 말은 말 그대로 경면주사가 없어서 석간주(산화철)로 단청을 칠했단 소리인 듯 합니다.
  • 역사관심 2021/11/07 03:53 #

    응가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확실히 18척기둥만 썼어도 분명 지금과 느낌은 좀 달랐을 것 같습니다.
    단청에 대한 해석은 각각 다를 수 있는데 저 역시 고려말에도 상록하단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알지만, 당시 더 주류는 역시 주칠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보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 응가 2021/11/08 15:34 #

    아무래도 현존하는 고려말 조선초 건축과 송나라 건축물 대부분이 상록하단으로 칠해져있어서 좀 더 보수적인 시각에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유물이 남아있는데, 지레짐작으로 이랬을것이다!! 란 글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보이기때문에 좀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것도 나쁘지 않을듯 합니다.(상상과 현실은 다른법이니까요)
  • 역사관심 2021/11/08 23:41 #

    물론입니다. 이번 글은 저도 저 사신의 시각에서 너무 대담하게 작성한 감이 있었다 생각합니다 ^^; 항상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 가녀린 산타클로스 2022/02/07 21:48 #

    종루의 유구는 이미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시에 발굴이 되었고, 거대한 초석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전시되고 있는 초석들이 바로 그 종루의 초석입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기록이 아닌 유구 위주로 제가 추정을 해본적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네요.

    https://cafe.naver.com/booheongiframe_url_utf8=%2FArticleRead.nhn%253Fclubid%3D10758331%2526articleid%3D206573

  • 역사관심 2022/02/11 13:11 #

    댓글을 지금에야 발견했습니다. 링크글을 보고 싶은데 로그인을해서 들어가도 404가 뜨네요;;
    관련 정보도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감사합니다.
  • 꾸질꾸질한 사냥꾼 2022/08/24 10:46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최근에 1894년 서울 사진에 나온 2층 건물을 못찾겠어서 이렇게 회원가입하고 덧글 달아봅니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1894JoseonSeoul.jpg

    사진에서 중앙에 있는 큰 팔작지붕 건물과 우진각지붕 건물이 각각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장소는 뒤의 북악산과 근정전으로 미루어보아 남대문통으로 상정하고 있는데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22/08/25 02:15 #

    저도 확실히 모르겠네요...; 말씀대로 남대문통 같기는 한데 당시의 주변가옥들에 대한 지도라든가 정보가 거의 없는지라... 그리고 사견으로 팔작지붕 건물은 2층일 가능성이 있지만, 우진각쪽은 단층같이 보입니다. 일단 19세기말에 우진각 지붕이 서울거리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돈의문 초루외에 우진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처음 보네요.

    관심이 가는 사진입니다. 저도 저장해두고 한번 찬찬히 살펴봐야겠네요 ^^;
    큰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자주 놀러와 주시길...
  • 꾸질꾸질한 사냥꾼 2022/08/25 10:47 #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체코인 브라즈가 1901년 남대문로에서 촬영한 사진 속에 나타난 건물과 동일한 건물로 보고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413027015) 서양식 건축으로 벽돌 몸체에 아치형 창문이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교회이거나 외국인 가옥인 듯한데, 지도에서는 전혀 확인되는 바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다시 한 번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 역사관심 2022/08/27 00:43 #

    아 저 건물이 맞아 보이네요.

    여기 등장하는 '번사창' 같은 류의 건물로 보이기는 합니다. 벽돌로 짓고, 지붕은 우진각 형식.
    http://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danggan0912&logNo=220621068140

    지금 남아있는 저런 건축물에 비해 이미 사라진 것 같아서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흥미로운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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