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에 등장하는 "바다위의 성"은, 그리고 고증 역사전통마


[한산: 용의 출현]의 주인공은 '학익진' 그 자체입니다. 이순신이 설계하는 이 학익진의 최종완성이 극의 목표이자 결말이지요. 위의 장면은 원균이 열등감과 존경심에 떨며 완성되어 위력을 발휘하는 학익진을 보며 내뱉은 표현입니다.

극중에서는 이런 식으로 표현됩니다.


그럼 진짜 한산도 대첩에서 학인진은 어떤 형태였을까요? 흥미로운 기사가 어제 떴습니다.


기사내용중 학익진과 이 '바다위의 성'이란 표현에 대한 부분이 다음에 있습니다.

③학익진은 ‘바다 위의 성’이었나?

영화는 한산대첩 당시 조선 수군이 학익진(鶴翼陣·학이 날개를 편 듯이 치는 진)을 펼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고, 이를 여러 차례 ‘바다 위의 성(城)’인 것으로 언급했다. 이 말의 출처는 ‘우리나라의 전선(戰船)은 위에 판옥을 설치하고 방패를 든 병사 100여 명이 둘러 있어 작은 성과도 같았다’는 ‘증보문헌비고’ 속 이항복의 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모든 전선이 성처럼 움직이지 않는 진을 유지한 뒤 적을 일거에 포격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 학익진으로 적선을 포위한 뒤에는 돌진해서 싸웠다는 것이다.

기사에서는 판옥선 그 자체가 '작은 성'과 같았다는 당대 인물인 이항복(李恒福, 1556~1618년)의 표현입니다. 전투대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요. 실제로도 한산도 대첩은 포위해서 적극적으로 좁혀나가며 부숴나간 것으로 선조실록에도 묘사되고 있습니다. 

선조 25년 임진(1592) 6월 21일(기유)
7월 6일에 순신이 억기와 노량에서 회합하였는데, 원균은 파선(破船) 7척을 수리하느라 먼저 와 정박하고 있었다. 적선 70여 척이 영등포(永登浦)에서 견내량(見乃粱)으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8일에 수군이 바다 가운데 이르니, 왜적들이 아군이 강성한 것을 보고 노를 재촉하여 돌아가자 모든 군사가 추격하여 가보니, 적선 70여 척이 내양(內洋)에 벌여 진을 치고 있는데 지세(地勢)가 협착한 데다가 험악한 섬들도 많아 배를 운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군이 진격하기도 하고 퇴각하기도 하면서 그들을 유인하니, 왜적들이 과연 총출동하여 추격하기에 한산(閑山) 앞바다로 끌어냈다.

아군이 죽 벌여서 학익진(鶴翼陣)을 쳐 기(旗)를 휘두르고 북을 치며 떠들면서 일시에 나란히 진격하여,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연속적으로 쏘아대어 먼저 적선 3척을 쳐부수니 왜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조금 퇴각하니,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발을 구르고 뛰었다. 예기(銳氣)를 이용하여 왜적들을 무찌르고 화살과 탄환을 번갈아 발사하여 적선 63척을 불살라버리니, 잔여 왜적 4백여 명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다.

10일에 안골포(安骨浦)에 도착하니 적선 40척이 바다 가운데 벌여 정박하고 있었다. 그 중에 첫째 배는 위에 3층 큰집을 지었고 둘째 배는 2층집을 지었으며 그 나머지 모든 배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대로 진을 결성하였는데 그 지역이 협착하였다. 아군이 두세 차례 유인하였으나 왜적은 두려워하여 감히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공격하여 적선을 거의 다 불살라버렸다. 이 전투에서 3진(陣)이 머리를 벤 것이 2백 50여 급이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으며 잔여 왜적들은 밤을 이용하여 도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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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오는 일본군의 "그 나머지 모든 배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대로 진을 결성하였는데"은 '어린진'을 뜻하는 것으로 이 역시 영화 '한산'은 정확히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거북선은 한산에서는 뒤에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2척이 투입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진법도에는 양끝에 포진되어 돌격선으로 학익진을 펼치는 동안 적을 정신없게 만드는 선제공격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돌격했다고 하지만, 당시 조선수군의 함포사격의 기본이 배를 틀어 측면에서 쏘고, 다시 돌려서 쏘는 것이 기본이었으므로 영화에 나온 사격술로 우선 기선제압을 한 후 돌격했을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또한 영화에서 판옥선들을 일시에 돌려 포를 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허구가 결코 아닙니다. 평저선의 특성상 충분히 가능했으며 이 역시 당시 수군의 함대운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적장인 와키자카의 증언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사족으로 이런 부분도 모두 전투장면에서 그대로 표현되었습니다.
임란당시 포격법을 통해 얻은 경험을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소조홀기]에 나오는 포격법인데, 직사포를 강하게 쏘기위한 거리가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게 영화에서 그대로 표현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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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위의 성

그런데 사료로써의 가치보다는 소설에 가깝지만, 후대의 일본문헌에 정확히 조선함대의 모습을 영화의 표현과 완전히 똑같이 하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바로 19세기 일본문헌인 [에혼 다이코기(絵本太閤記)]에 나오는 이 부분.

그 제조법은 두껍게 이어 붙인 판자로 배의 사면과 상하를 둘러 붙이는 것이니 그 형상이 거북 껍질과 같다. 이 판자에 작은 구멍을 여럿 내고 총과 활을 배치해서 병사들과 선원들이 그 안에서 전후좌우로 돌아가며 적선을 향해 무찌르려 한 것이다. (중략) 거북선을 나란히 하니 홀연히 바다 위에 성이 생겨난 것과 같아 한사람의 병사도 잃지 않고 그 배의 구멍에서 화살을 쏘는 것이 빗줄기보다 더 거셌다. 중략. 

-에혼다이고키 중

거북선을 설명하는 부분에 임란당시 여러 척의 거북선이 나란히 서니 '홀연히 바다위에 성이 생겨난 것 같다"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한산도대첩에 관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19세기 문헌이며 소설에 가까운 문헌이지만, 적어도 일본선함들보다 규모에서 컸던 조선함선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구절이란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김한민 감독이 이 부분을 인용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만, 우연이라도 정확히 같은 표현이 등장해 소개해 보았습니다.


덧글

  • 무명병사 2022/08/03 12:00 #

    고증에도 신경을 많이 썼군요. 그런데 이런 걸 알때마다 드는 생각은... 아... (생략)
  • 역사관심 2022/08/03 13:28 #

    흥미진진한 해전이었습니다~!
  • 제비실 2022/08/04 04:29 #

    조선 함선은 일본 함선과의 선박 재질면에서 삼나무로 가볍게 만드는 일본 함선과 달리 소나무 재료로 두껍게 만드는 터라 당파에서는 조선 함선이 유리할수가 있지요 물론 기동력에서는 일본 함선이 우세하겠지만 그리고 거북선은 일본 함선에 속도가 취약하여 돌격용으로 쓰기가 어려운 판옥선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거북선과 판옥선을 적절하게 조합시키면서 한산도에 승리할 토대가 되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함선 무장력에서 일본군이 소유한 대포는 죄다 서양으로부터 들여온 수입품들이고 수량도 얼마 되지 않을 뿐더러 가벼운 선체가 대포 반동을 견디기에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었기에 대포를 대량으로 함선에 장착하지 못했지요

    이런 질적인 전력차이가 한산도 대첩 같은 승리들을 가져온게 아닐까요

    그리고 거북선의 구조에 대한 2층설이나 3층설같은 논란들도 그러하고
    거북선의 용머리가 쇠뇌처럼 선체 안팍을 오고가는 기계적 원리가 있었다는 가설도
    그러해서 만약 거북선의 머리가 오고가는 것이 있었다면 이것도 중요한 과학역사적인
    성과일수도 있지요

    왜란때 당대인이었던 이덕흥의 간재집에서는 거북선의 두설복노 즉 머리에 쇠뇌를 숨겨서 설치했다고 번역되어 알려져 왔지만 그러나ㅣ 수평적인 방향으로 큰 구조물로 구성된 쇠뇌가 거북선 머리안에 장착할수 있을지 미지수이지요
  • 역사관심 2022/08/05 00:46 #

    맞습니다. 가볍고 빠른 삼나무로 만들었기에 우리 수군에 무방비였었지요. 과연 어떤 형태의 거북선이 임란당시에 운용되었는지... 문헌기록이나 증거가 빨리 좀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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