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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15세기 행랑루(行廊樓) 기록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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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지금은 볼 수 없는 형태의 누각인 행랑위에 세운 루, 즉 행랑루에 대한 추가기록을 발견하여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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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13권, 문종 2년 4월 11일 乙亥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의금부 도사 정옥경을 국문토록 하다

성균관 생원(生員) 박계금(朴繼金) 등이 상언(上言)하기를,

"신 등이 지금 가요(歌謠)를 바치는 일로써 와서 의금부(義禁府)의 곁에 모여 있었더니,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정옥경(鄭沃卿)이 처첩을 거느리고 행랑(行廊)의 누각(樓閣) 위에 있으면서 자기가 관장(管掌)한 산대 나례(山臺儺禮)를 그 아래에 모두 모아놓았습니다.

나장(螺匠) 5, 6명으로 하여금 쇠사슬을 쥐고서 사람들을 물리치고 갖가지 유희(遊戲)를 설치해 놓고서 처첩(妻妾)들과 함께 구경하고 있었는데, 학생(學生) 두서너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가다가 나장(螺匠)에게 매를 맞게 되므로 붙잡고 서로 힐책(詰責)하니, 정옥경(鄭沃卿)이 사분(私忿)을 참지 못하여 곧 의금부에 도착하여 나장(螺匠) 10여 명을 동원하여 학생을 붙잡아 머리털을 끌어당겨 반접(反接)을 하고 길가에서 돌려 보이며, 몰아치다가 매를 치기도 하면서 위세(威勢)를 함부로 부리고 지나치게 노하여, 제 마음대로 가두어 두었습니다. 

전하(殿下)께서는 선비를 예절로써 대우하는데도, 정옥경(鄭沃卿)과 같은 소신(小臣)이 처첩(妻妾)에게 뽐내려고 감히 이와 같은 짓을 했으니, 신 등은 몹시 마음이 답답합니다. 삼가 성상께서 재가(裁可)하소서."
하니, 임금이 사헌부에 명하여 이를 국문(鞫問)하도록 하였다.

○成均生員朴繼金等上言曰: "臣等今以獻歌謠事, 來聚義禁府之傍, 府都事鄭沃卿, 率妻妾在行廊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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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문종실록 1452년의 것으로 조선시대 사법부였던 의금부의 종육품관리였던 도사인 정옥경(鄭沃卿, 1416~1468년)이 지방 관아에서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기 위하여 벌이던 구나의식(驅儺儀式)인 나례를 행하기 위해 산대(일종의 무대)를 누각 밑에 설치하는 장면입니다. 

이전에 소개해 드린 행랑루의 기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래는 1431년의 세종대기록.

세종실록 52권, 세종 13년 6월 25일 丁巳
1431년 명 선덕(宣德) 6년
신개 등이 중외의 명산과 신소에 부녀들의 내왕을 엄금할 것을 상소하다

또 산붕(山棚)·나례(儺禮) 등 무릇 성대한 관광(觀光)의 일에, 대소(大小) 부녀가 혹 길가에 장막을 치고, 혹 행랑의 다락[樓] 위에서 얼굴을 들고 마음대로 구경하면서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어, 심히 부도(婦道)에 어그러지오니 더욱 통금(痛禁)하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어기는 자는 역시 상항(上項)의 예에 의하여 죄를 논하옵소서."

又有山棚儺禮凡諸盛觀之事, 大小婦女或張幕路傍, 或於行廊樓上, 靦面縱觀, 略無羞愧, 甚乖婦道, 尤宜痛禁, 違者亦依上項例論罪。

흥미롭게도 20년차이를 두고 세종대에도 행랑루위에서 '산붕', '나례'를 구경하는 장면이 똑같이 묘사되고 있어 이러한 일이 종종 있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소개한 또다른 기록은 역시 조선전기 문신인 유희춘(1513∼1577년)의 일기인 [미암선생문집]의 '일기'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정확히 1573년의 기록인데, 이 당시는 1567년 이후 그가 부제학, 대사간등을 역임하던 최고위 관리였던 시절이지요. 따라서 이 집은 한양의 고위관리 저택이었다 보면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를 배웅하는 부인이 그날따라 비가 오자 바로 ‘낭루(廊樓)’라는 구조물에 올라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겁니다.

眉巖先生集卷之七
眉巖日記 권 3, 癸酉(1573년) 3월 27일
日記 刪節○上經筵日記別編
己巳
○日昳歸舍。見兵曹望定。以希春爲禫祭時御前獅子衛將。來九日宣仁門罷漏時。開門。諸將受牌。軍士聚會。自太平館至議政府禮曹習儀。當具弓箭筒介大刀云。“日昳歸舍 冒微雨著笠帽 是 日之出也 夫人詣廊樓上觀之”; 朝鮮史編修會 編, 중략.

冒微雨著笠帽 비가 조금 와 삿갓 (립)을 착용했다.
夫人詣廊樓上觀之 부인이 낭루에 올라 보며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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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이러한 형태의 루에 대해 유추해 볼수 있는 (필자가 파악하는) 연구는 2016년의 이종성 선생의 '노은리고택 연구'가 유일합니다. 연구결과 현재와 다른 노은리 고택의 15세기 모습을 다음의 추정도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1400년대 기록들에 나오는 행랑루에는 이러한 형태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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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식 저택들이 재건되어 여러 형태의 '한옥'을 하루빨리 보고, 느끼고, 활용하는 단계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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