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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궁중숭불도와 15세기 이상좌 산수도의 익랑

며칠전 15세기 화가 이상좌(李上佐, 1465년~?)의 '산수도'에 나오는 '익랑'부분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15세기말~16세기초 익랑모습을 담은 조선회화 그런데 아직 소개하지 않은 학계에서 아직도 논쟁중인 비슷한 시기의 그림이 한 점 전합니다. 그림의 이름은 '궁중숭불도'로 16세기 중반의 그림으로 추정하는 설과 요즘 들어서는 이 그...

한국의 사라진 건축 (23)- 단속사의 높은 불전을 보고 쓴 기록 (조선전기 불전 높이기록)

우리 고대/중세건축의 경우 특정건축물에 대한 높이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황룡사 9층목탑과 고려사에 나오는 김준의 저택 (높이가 수 장)등을 제외하고는 드뭅니다. 물론 본 블로그에서 다룬 연복사 5층전각, 흥천사 5층전각 사리각, 만복사 5층전각등을 오르거나 비유로 추정할 수 있는 기록들은 있습니다만 (또한 고려도경의 고려 '가루' 기록등), 어떤 정확...

모화루와 민무구의 이층집개조로 보는 조선전기 목장들 능력 (15세기)

세종실록을 보면, 당대 '건축전문가'들에 대한 정보가 간접적으로 담겨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중 '중층건축'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을 하나 나눕니다. 1430년, 세종은 사신들을 접대하는 누각인 '모화루'가 단층이고 낮고 비좁으니, 2층집으로 개조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다음의 기록입니다.세종 12년 경술(1430,선덕 5)&nbs...

조선전기 저택 침루(寢樓)기록 추가발견

사실 '침루'라는 형식의 누각이 조선전기까지 존재했다는 것은, 여러 벽체가 있는 고려시대 이후의 누각기록이나, 회화등으로 확실해 보였습니다. 다만, '침루'라는 이름 즉, '숙박을 하는 루'라는 단어가 나오는 직접적인 기록은 세종대의 궁궐건축외에는 아직까지는 드물게 찾아낸 편입니다. 1) 예를 들어 고려.조선전기 이층침실, 침...

조선전기 왕자, 공주, 고위관자 저택의 누각높이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전기까지 이어지던 잠을 자는 2층루, '침루' (침방 포함)에 대한 기록은 여러 차례 글을 통해 알아 본 바 있습니다.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러한 누각들이 얼마나 높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나눈 적이 없었지요. 오늘은 그런 종류의 누각들의 '높이'에 대해 조금 알아보고자 합니다.세종(1397~1450년)과 성종(1457...

전기 경회루 3층 추측 (추가글)

이번 포스팅은 뻘글까지는 아니지만, 예전에 쓴 글에 부합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필자의 '감'에 의지한 글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작년에 임란전 3층 경회루에 대한 글을 쓴 바 있습니다 (링크). 그 중 이런 부분이 있었습니다.“明日將登慶會樓上, 通望處立標, 標內公廨幾處、人家幾坐, 竝計以啓。연산 57권, 11년(1505 을축 / 명...

조선전기의 정亭과 누樓의 구분 기록 (고려후기-조선초기 누각, 풍영루기록)

조선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김종직(金宗直, 1431~ 1492년)의 [점필재집]에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누각이 하나 등장합니다. 경북 상주에 있던 풍영루(風詠樓)가 그것입니다.=====점필재집풍영루중영기(風詠樓重營記)-김종직(金宗直)상주(尙州)는 낙수(洛水)의 상류에 위치하여 尙處洛水之上游감사(監司)의 본영(本營)이 되었으니, 而爲監司之本營 실로 동남...

조선전기 대형건물 복원은? (그리고 15세기 경복궁그림)

http://www.ytn.co.kr/_ln/0106_2008111818580300002008년자 뉴스입니다.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 구간.좌우 양측 용성문과 협생문 자리에서 초석과 기단 등 건물의 기초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건물터가 나왔습니다.가로 11.2m, 세로 50m 정면 12칸, 측면 3칸의 동서 대칭구조입니다."이 조선 전기(조일전쟁/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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